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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성명서 권고의 탈을 쓴 복지예산 삭감
15-11-19 18:02 7,417회 0건

ㆍ국무총리 산하 사회보장위원회, 지자체에 내린 중앙정부와 유사·중복사업 정비 지침 논란

“유사·중복사업을 정비하라는 것이지 폐지하라는 것은 아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원의 말이다. 2015년 8월 국무총리 산하 사회보장위원회(위원장 황교안)는 지방자치단체에 중앙정부와 유사·중복되는 복지사업을 정비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사회보장위원회는 앞으로 사회보장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사회보장정비협의회를 구성해 지자체 복지사업 정비를 추진할 계획이다. 협의회에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도 들어가 있다. 연구원 담당자는 정비는 ‘폐지’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정비지침 공문에 나온 사업군별 정비유형을 보면 ‘폐지권고’ ‘폐지, 변경’ ‘통·폐합’ 등 ‘폐지’를 전제한 지침들이 주를 이룬다. 예산 삭감액도 산정돼 있다. 1496개 지자체 사회보장 사업에서 9997억원의 복지예산이 삭감될 예정이다. 사업 수로는 25.4%, 예산으로는 15.4%를 줄이는 것이다. 대상자는 654만명이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도 대상 포함‘폐지’를 전제했음에도 ‘폐지’는 아니라고 말하는 데에는 ‘유사·중복사업’이라는 정부의 근거가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인천시에 사는 유명자씨(42)는 중증장애인이다.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없다. 유씨는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받고 있다. 국가에서 주는 최대 서비스 시간은 월 401시간이다. 하루로 계산하면 13시간 정도다. 유씨가 국가의 지원만 받는다면 하루 11시간을 혼자 있어야 한다. 여기에 지자체가 자체 예산으로 추가적으로 지원을 한다. 최대 월 80시간이다. 그러나 지자체의 지원을 더해도 유씨는 평균 하루 10시간은 혼자 있어야 한다. 유씨는 활동보조인이 퇴근한 밤만 되면 잠을 이루기 힘들다. 갑작스럽게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사고에 대해 최소한의 방어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작은 소리와 미세한 냄새에도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불이라도 날까봐 단 하루도 편하게 잠들지 못한다. 화재가 난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중증장애인이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유씨의 가슴은 덜컥 내려앉았다. 중증장애인이 인공호흡기 분리, 화재 등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정부는 응급사태 발생에 대비하기 위해 2013년 말부터 ‘중증장애인 응급알림e’ 사업을 시행했다. 그러나 유씨에게는 다 무용지물이다. 응급상황 발생 시 비상벨을 누르거나 소화기를 작동시키라는 식인데,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유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행히 지난해 11월 인천시가 24시간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를 도입하면서 유씨는 그 대상자로 선정됐다. 유씨는 그제서야 불안하지 않게 잠을 잘 수 있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국가의 지원만으로 안전하지 않았던 유씨의 생활이 지자체의 추가적인 보조로 24시간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 받게 됐다. 그러나 이번 ‘유사·중복사업 정비지침’에서 24시간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가 대표적인 중복사업으로 거론되고 있다. 대상자가 동일하고 사업의 이름이 같아 중복사업으로 분류돼 정비사업 대상이 된 것이다. 조현수 전국장애인철폐연대 정책실장은 “중앙정부의 부족한 부분을 지방자치단체가 채워주고 있는 것이기에 유사·중복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비판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사회보장사업에서 유사·중복사업이 없다는 것은 유사·중복사업 정비를 추진하고 있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9월 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사회보장사업 실태조사 및 유사·중복사업의 조정방안 연구> 보고서는 중앙정부 사회보장사업과 지자체 사회보장사업을 검토해 유사·중복 여부를 분석했다. 보고서는 360개 중앙정부 사회보장사업과 15개 지자체의 샘플 사회보장사업을 조사했다. 지자체에 대해서는 ‘중앙정부 사업과 유사목적, 유사대상인 사업을 기준으로 세부적인 급여내용, 대상의 동일성’을 조사했다. 보고서의 종합적인 결론은 다음과 같다. “사회보장사업에 대하여 다차원적인 접근을 통해 사업의 중복 여부, 유사성을 검토한 결과, ‘중복’ 사업은 발견되지 않았음.

실제로 동일 대상에 대한 완전히 동일한 목적, 동일한 수단(급여유형 등 지원내용, 운영방식)을 의미하는 중복사업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사회보장사업의 수급이력 분석결과에서도 사업을 중복 수급하는 사례는 없는 것으로 확인됨.” 지자체 사회보장사업 1496개에서 유사·중복성이 발견됐으니 이를 정비하라는 정부의 지침과는 배치되는 결과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사회보장사업이 정비돼 추진될 필요는 있지만, 그 출발이 유사·중복성이라는 것은 사실 큰 무리가 있다. 지자체는 중앙정부의 복지사업을 보충하는 성격이 있다”며 정부가 ‘유사·중복’ 사업 목록을 만들고 이를 토대로 정비지침을 내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현실을 무시한 유사·중복사업 목록

정부의 ‘어불성설’ 정비지침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유사·중복’ 사업이라 부를 수 없음에도 목록에 끼워넣다 보니 1496개 사업 가운데 중증장애인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처럼 유사·중복이라고 할 수 없는 사업들이 확인되고 있다. 서울시(구 제외)에는 6개의 사업을 정비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이 가운데 하나가 ‘어르신 돌봄 사업’이다. 그러나 어르신 돌봄 사업은 국비 사업으로, 정부와 지자체의 매칭을 통해 예산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중앙정부의 사업이기 때문에 지자체가 결정하는 사업이 아니다. 한마디로 ‘중복·유사’ 여부의 조사대상도 아닌 사업이다. 사업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도 없이 목록을 만든 셈이다. 사회보장위원회는 각 지자체와 사회보장사업 정비와 관련해 컨설팅을 진행했다. 컨설팅 결과 사회보장위원회는 서울시의 경우 유사·중복이 아니니 지침으로 내려왔던 6개의 사업을 그대로 진행해도 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사회보장위원회는 관계자는 “어차피 권고사항이었기 때문에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하면 된다”며 ‘유사·중복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지자체의 자율에 떠넘겼다. 컨설팅을 담당했던 보건사회연구원 관계자도 “컨설팅 결과 서울시는 그대로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유사·중복이 아닌 사업들을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 정비목록에 끼워넣은 셈이다.

그러나 ‘어불성설’인 국가의 정비지침 때문에 복지 수혜자들의 생존권은 위협받고 있다. 정부의 지침이 내려오면서 지자체의 장애인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는 위기에 처했다. 인천시는 2014년 유명자씨를 포함해 3명을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 대상자로 선정하고, 올해 예산을 확대해 추가로 7명을 더 선정할 계획을 세웠다. 예산도 확보해 두고 향후 그 지원범위도 점차적으로 넓혀나갈 계획이었다. 올해만 해도 신청서를 받고 7명을 추가로 선정하기 위해 방문 면접까지 진행한 상태였다. 그러나 정부의 지침으로 사업 확장은 일단 중단됐다. 추가 지원 7명은 물론 유씨를 비롯해 기존 24시간 활동 지원을 받았던 3명 또한 지원이 끊길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다. ‘유사·중복사업 정비’를 내세운 정부의 정책이 당사자들에게는 생존권 위협이 된 셈이다. 유명자씨는 “지원이 끊기면 내가 죽어야 하는 건가”라며 불안과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2014년 6월 서울광장에서 열린 중증근육장애인 오지석씨(32)의 장례식에서 참석자들이 슬픔에 잠겨 있다. 오지석씨는 활동보조인이 없는 사이 인공호흡기가 빠져 의식을 잃었다가 47일 만인 6월 1일 숨졌다. / 김정근 기자

지자체 관계자들은 중앙정부의 지침과 시민사회의 반대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인천시의 한 관계자는 “처음에는 지침에 따라 24시간 장애인활동지원사업을 중단하겠다는 입장이었는데, 장애인단체 등의 반대가 커서 어떻게 해야 할지 다시 협의 중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유사·중복사업 정비지침이 (강제가 아니라) 권고사항이긴 한데 지자체는 힘이 없다. 정비가 가능한 사업과 가능하지 않은 사업으로 일단 자체적으로 나누기는 했는데, 중앙정부에서 내려온 지침에 대해 우리가 총대를 멜 수는 없다”며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지자체가 눈치를 보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자치단체장이 새누리당 소속인 경우는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는 교부금 삭감이다. 사회보장위원회 관계자는 “이번 정비사업은 권고를 하고 지자체 자율에 맡긴다는 것이지,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지자체 교부금을 깎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11월 11일 박근혜 대통령도 참석한 제11차 사회보장위원회에서는 사회보장위원회 회의 결과에 따르지 않을 경우 교부금을 삭감할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관계기관장은 사회보장위원회 심의 결정사항에 대한 조치 결과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며, 사회보장사업 신설·변경 시 복지부 협의 결과는 예산편성 및 교부금 교부와 연계된다.” 근거는 내년 1월 1일 시행할 예정인 지방교부세법 시행령이다. 사회보장사업 신설·변경 예산 요구 시 복지부와의 협의내용 결과를 첨부토록 예산편성지침을 개정했고, 신설·변경 협의 결과를 미이행할 경우 지방교부세를 감액할 수 있도록 했다.

‘교부금 삭감’으로 지자체 압박

정부는 이번 정비지침으로 복지사업 확대 및 관련 예산 증액을 요구하는 지자체를 압박하는 동시에 ‘이미지’까지 챙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위원장의 설명이다. “교육청과 지자체가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공약에 따라서 의무지출이 늘어나게 되면서 예산을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누리과정에 대해서 교육청이 정부에 예산을 달라고 하는 데에는 타당한 근거가 있다. 정부가 안 줄 명분이 약하다. 그러니까 지자체를 공격하기 위해 본질적인 문제를 벗어나 ‘지자체가 허튼 데 돈을 쓰고 있고, 지자체 복지가 비효율적이고 낭비가 있다’는 이미지를 남기려고 하는 것이다. 1496개 사업·1조원 삭감을 이야기하는데, 사실 중복·유사사업이 아닌 게 많기 때문에 이를 정비하기 어려울 것이다. 많이 해봤자 여기서 10%인 1000억 안팎이다. 정치적으로 이미지를 챙기는 것이다.”

2014년 3월 송파구 세 모녀 사건이 발생하면서 복지 확대에 대한 여론의 목소리가 높아졌을 때에 사회보장위원회는 회의를 열어 ‘촘촘한 복지 구현’을 목표로 ‘지자체의 재량 강화를 통한 신속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지자체의 적극적인 선(先)지원 유도를 위해 사후 책임부담 완화’ 등을 내세우며 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여론과 목소리를 같이했다.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정부는 복지사업에서 지자체 재량보다 사회보장위원회의 위상을 강화하려고 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사업이 이번 정비지침이다. 위에서 언급한 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보장사업 실태조사 및 유사·중복사업의 조정방안 연구> 보고서는 “실증되지 않은 담론 차원의 유사·중복 논의는 막연한 불신과 복지 축소로 오도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어불성설 유사·중복사업 정비지침’ 또한 복지에 대한 막연한 불신과 복지 축소 여론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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